다음 번 플랫폼은 채팅 - 월간이모 4월호 기고글

다음 번 플랫폼은 채팅 - 월간이모 4월호 기고글

월간이모 4월호에 기고했던 내용을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카카오톡, 왓츠앱, 위챗, 라인 같은 채팅앱들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모바일의 특성에 잘 맞고 통신사가 주도했던 SMS의 폐쇄적 구조가 영향을 준 결과였죠. 하지만 혜택은 애플과 구글로 대표되는 모바일 운영체제를 장악한 회사들이 구축한 플랫폼에 돌아갔습니다. 개발자들은 모바일 앱을 만들었고 Mobile First라는 디자인 트렌드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웹 기반의 복잡한 서비스들은 모바일의 작은 화면과 웹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을 만나면서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지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바일도 복잡한 인터페이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더 간결한 인터페이스를 지향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채팅, 정확히 말하면 채팅봇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채팅이 혼자서 다하는 포탈 느낌이었다면 채팅봇은 모바일 운영체제처럼 플랫폼이 되어 다양한 서비스들을 제공할 것입니다.

국내외의 여러 사람이 2016년에 채팅 또는 채팅봇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한 느낌도 있지만 이러한 흐름이 있다는 겁니다. 기존의 채팅앱들도 이것저것 잘하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요? 저는 그 이면에 슬랙이 있다고 봅니다. 슬랙에는 다양한 외부서비스들을 연동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을 사용하다 보니 일반 사용자들에게 채팅이 줄 수 있는 장점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물론 슬랙에서 하는 것들은 대부분 IRC에서도 가능했던 것들이지만 IRC는 Geek 한 개발자들이 주로 사용하던 것이었다면 슬랙은 이걸 개발자가 아닌 IT 업계 사람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고 모바일에 최적화해서 잘 만들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슬랙이 아닌 채팅 서비스들에서 일반 사용자들에게도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겁니다. 마침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앱 시장의 성숙화로 개인이 설치하는 앱이 많아지고 인터페이스도 복잡해지면서 간단한 인터페이스로 한군데서 다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고 있었죠.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SXSW 2016 에서도 이와 관련한 이벤트가 몇개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벤트 제목을 보면 채팅봇 개발자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이미 봇을 개발하는 사람들과 이를 부르는 용어가 존재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채팅과 봇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확실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The Future of Chat Isn’t AI’ 글에서는 “Chat apps will come to be thought of as the new browsers; bots will be the new websites. This is the beginning of a new internet.” 라고 하며 채팅과 봇과 플랫폼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같은 채팅앱은 익스플로러, 크롬 같은 브라우저이고 봇은 네이버, 다음 같은 웹사이트입니다. 우리가 익스플로러, 파이어폭스, 크롬을 번갈아가며 사용해도 네이버는 똑같이 보이듯이 카카오톡, 라인 같은 채팅앱을 변경하면서 사용해도 봇은 같은 기능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 선상에서 모바일 운영체제가 가진 폐쇄적 특징에서 조금 벗어나, 웹보다는 폐쇄적이지만 기존 모바일보다는 공개된 형태의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 결과 대부분 개발자는 채팅앱을 만드는 게 아니라 채팅봇을 만들게 될 겁니다. 브라우저 만드는 회사가 많지는 않은 것처럼요.

채팅봇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 정리해봤습니다.

  • 즉시성
  • 간결한 인터페이스
  • 많은 사용자

즉시성이 ‘매력적인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기존 채팅과 비교하여 봇이 바로 응답해준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자주 물어보는 고객문의를 채팅으로 자동으로 응답하는 것은 FAQ를 제공하거나 사람이 채팅으로 응답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봇을 통해 즉시 알려주는 것은 기존의 앱이나 모바일 웹이 푸쉬에 의존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만 푸쉬가 모바일 운영체제에 의존적이라는 것에 비해 채팅은 기본 기능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텔레그램 하단버튼

텔레그램 하단버튼

텔레그램이나 위챗 등에서 사용 중인 인터페이스는 텍스트와 간단한 버튼을 이용합니다. 많은 기능을 담아내기 위한 인터페이스와 추상화로 사용자들이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간결한 인터페이스의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인터페이스도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IRC나 슬랙처럼 사용자들이 정해진 명령어를 입력하게 할지, 아니면 자연어 분석을 할지, 그저 간단한 버튼을 보여줄지 아직 모릅니다.

다재다능하고 장점이 많은 플랫폼이라 해도 사용자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IRC와 슬랙의 예처럼 말이죠. 채팅 서비스들은 이미 소셜네트워크보다 많은 월간 활성화 사용자를 가지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보다 더 많은 월간 활성화 사용자를 가진 채팅

소셜네트워크보다 더 많은 월간 활성화 사용자를 가진 채팅

그렇다면 채팅봇으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아직 이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페이스북 메신저는 게임을 바로 호출하는 것을 테스트하고 있고, 텔레그램 봇스토어에는 날씨, 게임, 유튜브 자동다운로드 등 다양한 형태의 봇들이 올라와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 어떤 것을 사용자들이 잘 받아들일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입니다. 채팅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킬러봇(킬러앱 같은 개념)이 2016년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슬랙이나 개발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채팅봇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슬랙과 개발자들의 특성상 생산성을 향상해주는 것들이 많지만, 텔레그램 봇스토어에는 게임, 쇼핑, 검색, 뉴스 등 일상생활에 밀접한 것들이 많고, 채팅 형태로 뉴스를 제공하는 Quartz 등 별도의 앱에서도 채팅 형태의 인터페이스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봇에 대한 개발 수요가 있다 보니 Hubot, Lita, BotKit 등 관련 개발 라이브러리도 생기고 있습니다. 봇은 인터페이스가 간결해 UI 개발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고, API도 단순해 처음 개발은 수월한 편입니다. 그러나 여러 단계를 다루는 경우 이를 처리하는 부분이 복잡해질 수 있어, 위와 같은 봇 프레임워크들도 많이 쓰일 것입니다.

채팅봇의 흐름은 클라이언트 위주 개발에서 다시 서버 개발 위주로 전환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초기 PC 시절 데스크톱 운영체제에서 사용하는 클라이언트 기반 앱들이 주류였다가 웹 시대가 되면서 서버 개발 위주로 그다음 모바일에서는 다시 클라이언트 개발 위주로 전환되는 흐름이 있었는데요. 채팅봇은 다시 이 흐름을 서버 위주로 전환하게 됩니다. 사용자와의 접점인 클라이언트 영역은 SMS가 될 수도 있고 채팅앱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모두 서버에서 제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사물인터넷(IoT)과 사용자 접점 장치(스마트폰, 시계, 태블릿), 개인화 서비스 등이 점차 발달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간결한 인터페이스를 가진 채팅은 그 가능성이 큽니다. 다양한 장치마다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기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사용자의 인지능력이나 개발 속도 등을 고려해보면 간결한 인터페이스로 서버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채팅은 큰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웹과 같이 새로운 기능을 제공할 때 사용자들이 앱을 업데이트할 필요 없이 바로 적용할 수 있고, 빠른 피드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번 플랫폼이 채팅이 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글을 적었습니다. 실제로는 안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많이 언급되는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동영상보다는 채팅이 다음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기술들은 특정 영역에서 장점은 있겠지만, 일반 대중이 얼마나 받아들여 자주 사용하게 될 지는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고 채팅이 모바일 앱이나 웹을 대체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바일 앱이 인기지만 여전히 웹에 맞는 서비스가 존재하듯이, 채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2016년은 채팅봇의 시대가 될까요? 그런 시대가 오기 위해서는 일반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비공개로 제공 중이라는 ChatSDK가 공개되고, 많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인기를 얻는 채팅봇이 나와야 가능성이 커진다고 봅니다. 2016년 1분기가 끝나가는데 가시적으로 보이는 게 없어서 저도 잘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가장 먼저 그 흐름을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추가. 이글을 작성한 게 3월 20일이고 그 후 10일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라인 컨퍼런스 2016행사에서 올여름에 채팅 봇 API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고, 마이크로소포트는 Build 2016행사에서 Skype BOT 서비스와 다른 봇 서비스를 연동하기 쉽게 하는 Bot Framework도 발표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4월에 있을 페이스북 개발자 행사인 F8에서 페이스북 메신저의 발표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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